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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빈

유불선의 공통점

삼원회 2015.08.06 18:18 조회 수 : 640

용어의 배경

삼위일체의 구성으로 파악하고자 한다면 도가(道家)는 도상덕(道象德)이라 하고, 불가(佛家)에서는 체상용(體象用)이라 한다. 두 가지 구성으로만 파악한 것이 도가에서는 도덕론, 불가에서는 체용론, 유가(儒家)에서는 이기론(理氣論)이라 한다

그런데 도덕론이라는 명칭보다는 체용론, 이기론 이라는 명칭이 보다 널리 사용되어 왔다. 그 이유는 아마도 안빈낙도(安貧樂道)하는 도가의 특성상 유가나 불가보다는 세상일에 소극적이었던 데에 원인이 있는 것 같다.

이하에서는 유불선(儒佛仙)의 용어를 비교해 봄으로써 동양의 유불선의 사상이 서로간에 어떻게 연결되고 통하는지를 간략하게 살펴보아 조식수행의 좌표를 짚어보고자 한다.

 

체용론의 등장

체용론이 처음 등장하는 것은 한대(漢代)이다. 정현(鄭玄)은 〈예기 禮記〉 서(序)에서 “마음을 통제하는 것을 체(體)라 하고 그것을 실천하고 행하는 것을 용(用)이라 한다”고 하여 체용(體用)이라는 용어가 처음 등장하였다.

삼국시대 위(魏)나라의 하안(何晏)· 왕필(王弼) 등에 의해서 본말(本末)론으로 발전하였다. 본말론의 개념은 중국 체용론의 원형이 되었다.

 

불가의 체용론

중국에 불교가 전파되면서 본말론은 다시 체용론이라는 이름으로 학문적으로 더욱 체계화되고 발전하였다.
체는 사물의 본체, 근본적인 것을 가리키는 것이며, 용이란 사물의 작용 또는 현상, 파생적인 것을 가리키는 개념으로 사용된다.

체용론은 체상용(體象用)의 구성으로 되어 있는데, 보통 상(象)을 빼고 체용론이라 한다. 도상덕(道象德)이 체상용(體象用)으로 이름을 바꾸었을 뿐 삼위일체 구성의 논리적인 실질은 동일하다.

체(體)가 상(象)을 빌어서(통해서) 용(用)을 펼치는 것이 삼위일체 구성이다. 이 책의 1부에서 본 천지인(天地人)의 논리이다.

상(象)은 단순히 사물의 형상을 말한다. 사람에 비유하면 상(象)은 단순히 외모를 말한다. 이에 비해 그 사람의 성격, 인간성, 지식, 사회적 지위 … 등 그 사람이 지니고 있는 내면의 모든 것이 체(體)가 되고 그 사람이 하는 일이 용(用)이 된다.

 

유가의 이기론

송(宋)대에 성립된 유가(儒家)의 성리학은 이 불교적 체용론을 받아들여 발전시켰다. 인간의 성정(性情)을 이기론(理氣論)으로 설명하였으므로 성정과 이기의 앞 글자만을 따서 성리학(性理學)이라 한다.

이를 집대성한 사람이 주희(朱喜)이므로 주자학이라고도 한다.

여기서 성(性)은 4단(四端-仁義禮智)으로 인간의 본성을 말하며 이 것은 이(理)의 발동이라고 한다. 정(情)은 기(氣)가 발동한 것이며, 중용(中庸)의 희노애락(喜怒哀樂)이 세분되어 7정(七情-喜怒哀懼愛惡慾)으로 되었다.

 

조선의 성리학

주희는 사단(四端)은 이(理)가 발하는 것이며, 칠정(七情)은 기(氣)가 발하는 것으로 설명하여 양자를 구분하긴 했다, 그러나 사단과 칠정의 이기(理氣) 분속 문제를 깊이 있게 다루지는 않았다. 사단과 칠정의 이기 분속 문제를 본격적으로 다룸으로써 성리학의 심성론을 한층 발전시킨 것이 우리나라의 사단칠정논쟁이다.

 

사단칠정 논쟁

이황과 그의 제자인 기대승(奇大昇)은 8년에 걸쳐 편지로 논쟁하였는데, 유명한 사단칠정(四端七情) 논쟁이다. 이 때 이황은 기대승을 제자로 대하지 않고 대등한 학자로 대우하였다고 한다.

퇴계 이황(李滉)은 사단(四端)은 이(理)의 발동이고, 칠정(七情)은 기(氣)의 발동이라고 하였다. 기대승(奇大昇)은 이에 반론을 제기하고 칠정(七情)이 발해서 절도에 맞으면 그것이 사단(四端)이 되는 것이라고 하여 이기일원론(理氣一元論)을 주장하였다.

이에 따라 이황은 이(理)가 작용하여 기(氣)가 이에 따르기도 하고, 기(氣)가 작용하여 이(理)가 그 위에 타기도 한다고 하여 이기이원론(理氣二元論)적인 이기호발(理氣互發)설로 수정하였다.

사칠논쟁(四七論爭) 이후 구봉 송익필(宋翼弼)과 율곡 이이(李珥)는 스스로 활동 작용하는 것은 기(氣)뿐이라 하여 이황의 이기호발(理氣互發)설을 부정하며 기일원론(氣一元論)으로 발전한다. 서경덕(徐敬德)의 태허설(太虛設)과 같은 맥락이다.

 

하고 싶은 말

도(道)라고 하는 데서 덕(德)이 생겼으므로 도덕(道德)이라 하였다. 이 논리가 불가(佛家)에서는 체용론(體用論)으로 유가(儒家)에서는 이기론(理氣論)으로 사용되었다. 이기론은 인간의 성정을 탐구하는 성리학(性理學)으로 발전하였다.

성리학(주자학)은 사칠논쟁으로 우리나라에서 꽃을 피웠으며, 이(理)와 기(氣)의 역할이 대등한가 아닌가에 따라 이기이원론과 기일원론으로 구분되었다. 구한말(舊韓末)에는 최제우(崔濟愚), 손병희(孫秉熙)에 의해 동학의 인내천(人乃天)사상으로 새롭게 태어나게 된다.

위에서 본 바와 같이 도덕(道德), 체용(體用), 이기(理氣), 성정(性情) 등의 용어와 학문은 그 출발을 도에 두고 있다. 시대에 따라 이름을 바꾸고 사상을 바꾸어 새롭게 태어났을 뿐 도의 근본은 달라진 것이 없다.

도를 통하여 하늘의 이치를 깨닫는 방법이 우리 천산민족의 조식법이다.

깨달음을 얻은 우리의 선조들은 홍익인간의 이념에 따라 그 뜻을 세상에 널리 알렸다.

그것은 우리의 문화와 전통으로 이어져 내려왔다.

속담에서 일상용어까지 도는 우리 민족의 풍속과 예법 등 생활 구석구석까지 스며들지 않은 곳이 없다. 천부경(天符經)으로 시작되는 우리의 문화는 도의 문화이다. 우리 민족의 문화와 전통은 도에서 출발하여 도로서 계승되어 왔다.

조선 중엽 사칠논쟁(四七論爭)으로 활짝 피었던 우리 문화가 구한말(舊韓末)에 인내천(人乃天) 사상으로 다시 태어났으나 불행하게도 이어지지는 못하였다.

우리의 문화는 친구가 아니면 적이라는 식의 이분법적인 흑백논리의 문화가 아니다. 흑백이 화합하여 다시 3(三)으로 태어나는 도의 문화이다.

이러한 점에서 우리 민족의 문화와 전통에 대하여 자부심을 갖지 않을 수 없다.

서구 문명이 들어오면서 물질만능이라는 말이 생겨났다. 컴퓨터로 대변되는 물질문명의 발달은 우리의 몸을 편하게 해줄 수는 있지만, 우리의 정신을 자유롭게 해주지는 못한다. 진정한 자유는 도에 순응하여 하늘과 내가 하나가 될 수 있도록 내 마음을 하늘에 맞추어야 얻을 수 있다.

태초에 천지가 개벽 한 이래 지금까지 변하지 않고 영원불멸한 것이 도이며 하늘의 이치이다.

이에 비해 이승을 다 살면 죽어야 하는 것이 짧은 우리들의 인생이다. 짧은 인생에서도 수없이 변하는 우리들의 마음에 하늘이 그 뜻을 맞추어 주지는 않는다.

마음의 평화가 뒷받침되지 않는 물질의 풍요로움은 모래 위에 쌓는 성과도 같은 것이다. 진정한 평화는 내 안의 참(眞) 나를 찾아서 하늘과 내가 하나임을 확인하는 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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