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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빈

현빈(玄牝)의 다른 용어들

삼원회 2015.08.06 17:59 조회 수 : 568

현빈은 상(象)이다

현빈은 도덕경에서의 목차의 제목(성상成象)이 말해 주듯이 도가 만들어 낸 상(象)이다. 그것은 구체적으로 현빈이며, 하늘에 있어서는 하늘의 문인 삼태극(三太極)을 의미하고, 사람에 있어서는 하늘과 연결될 수 있는 문인 백회(百會)를 의미한다.

도(道=虛)와 현빈과 깨달음(道의 묘용妙用을 알게 됨)을 체상용(體象用-삼위일체)의 구성으로 이해하면 현빈은 도가의 전문용어이다.

한국선도 삼원학회 2015-08-06 17-57-13.png
이 된다.

 

따라서 도덕경은 도경(道經)에서 도의 체(體)에 해당하는 부분을, 덕경(德經)에서 도의 용(用)에 해당하는 부분을 각각 기술하고 있다. 그런데 위 문장은 비록 도경(道經)에 포함된 문장이지만 도의 상(象)에 대하여 설명한 문장이다.

1부에서 정기신을 줄여서 정신이라 한다고 잠깐 언급하였듯이 체상용(體象用)도 줄여서 체용(體用)이라고 한다. 주역에서는 체(體)와 용(用)을 주로 분석한다. 도덕경에서도 상(象)을 달리 구분하지 않고 이 곳에서 설명하였다.

도덕경의 위 문장은 성상(成象)이라는 제목이 말해 주듯이 도의 상(象)을 설명하는 문장이며, 도의 상(象)은 구체적으로 현빈이라는 것을 말하기 위한 문장이다.

즉 도의 상(象)은 구체적으로는 현빈인데, 그 것은 하늘의 삼태극으로서 도의 용(用-작용)을 주관하게 되는 것이다. 하늘의 도는 삼태극을 통하여 사람의 백회와 연결하여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왜 상(象)이라 했는가?

노자의 도덕경은 도와 상(象) 그리고 덕(德)의 삼위일체 논리로 기술되어 있다. 불가에서는 체(體), 상(象), 용(用)의 논리로 되어 있다.

도가보다는 구체적이고 세분화된 느낌이다.

체(體)는 도덕경 본문에는 보이지 않으나 상(象)과 용(用)은 본문에 나오는 글자이다. 도덕경에서는 “도(道)는 비롯됨이 없이 스스로 존재하며 상(象)의 앞”이라고 했다.(吾不知誰之子 象帝之先) 따라서 상(象)은 도(道)에서 비롯된 것이다.

 

여기서 두 가지 문제를 제기하여 답하고자 한다.

상(象)은 코끼리를 뜻하는 글자이다. 삼위일체의 논리를 상식적으로 생각해 보면 像(형상 상)을 써야 옳을 것 같다. 그런데 ‘코끼리 상’이라는 글자를 사용했다. 왜일까?

사마천의 사기(史記) 기록으로 보면 대륙에서 도덕경은 불경보다 시기적으로 앞서고 있다. 불가에서 도가의 상(象)을 다른 글자로 바꾸지 않고 그대로 따랐다고 할 수 있다. 나아가서 불가에서는 코끼리를 신성한 동물로 여기고 있다. 왜일까? 이것은 삼태극을 보면 그 뜻을 알 수 있다.

삼태극은 그 끝을 알 수 없을 만큼 무한히 커다란 세 개의 골짜기로 되어 있으며, 그 색이 마치 코끼리의 피부의 색과도 같기 때문이다.

그래서 노자는 도덕경에서 곡신(谷神)이라 표현했고 코끼리 상(象)이라는 글자를 사용했다고 볼 수 있다.

불가에서도 코끼리의 피부의 색과 같은 삼태극을 달리 표현할 방법이 없으므로 그대로 사용한 것으로 여겨진다.

백회를 니환(泥丸: 진훍 니, 알약 환)궁이라고 하는 유래도 삼태극의 모양에 근거를 두고 있다. 위에서 삼태극이 코끼리의 피부의 색과 같다고 하였는데, 이는 진흙의 색과 흡사하다. 따라서 삼태극을 코끼리 상(象)이라고 한 이유와 마찬가지로 이환궁은 진흙의 색을 본받아 만든 글자이다. 환(丸)이라고 한 이유는 백회가 환약(丸藥)처럼 둥글기 때문이다.

 

연꽃이 피는 진흙

연꽃을 신성(神聖)시하는 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우선 연꽃이 사는 곳이 진흙이다. 진흙은 삼태극을 상징하고, 연뿌리는 내부가 비어 있으므로 허(虛)를 상징한다. 그리고 수행자의 몸에서 원신(元神)을 길러 백회로 출태(出胎)되는 모습이, 마치 연꽃이 필 때 꽃 봉우리가 수면위로 올라와 꽃이 피는 그 모습과 흡사하다. 이처럼 연꽃은 도(道)에 대한 핵심이 아주 잘 함축되어 있으므로 신성시하는 것이다.

하늘의 삼태극과 인간의 백회는 크기만 다를 뿐 그 모양은 같다. 따라서 현빈은 하늘에서는 삼태극이며, 인간에게는 삼태극에 대응하는 백회를 의미하는 것이다.

실제로 수행의 한 단계를 넘어 삼태극에 가보면 무한히 크고 칠흑같이 어두운 세 개의 골짜기가 서서히 왼쪽으로 돌고 있음을 보게 될 것이다. 하늘을 ‘검을 현(玄)’ 자를 사용한 이유나 이환궁(백회)이라 할 때의 ‘진흙 니(泥)’이나 ‘코끼리 상(象)’이라고 한 근거가 모두 하나로 통하고 있으며 하늘로 상징되는 삼태극의 색에서 유래한 것이다.

삼태극은 우주선을 타고 가서 육안으로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우주선으로 온 우주를 뒤진들 그 어디에서도 삼태극을 볼 수는 없다. 살아있는 사람은 수행자가 출태시킨 원신(元神)과 본신(本神)만이 삼태극을 볼 수 있으며 그 안으로 들어갈 수 있다.

그리고 사람이 세상에 태어날 때 영혼이 천상으로부터 이 문(삼태극)을 통하여 인연이 있는 육신에게 접하게 되어지며, 사람이 수명을 다하여 죽음에 이르게 되면 영혼은 이 문(삼태극)을 통하여 다시 천상으로 오르게 된다.

 

삼신할미

우리에게 친숙한 ‘월하노인(月下老人)과 삼신(三神)할미’의 설화(說話)가 있다. 월하노인이 벌여놓은 남녀의 인연은 삼신할미의 노력을 통해서 맺어진다는 내용으로 되어 있다. 이 설화는 도가 세상에 펼쳐지는 이치를 의인화(擬人化)시켜서 이야기로 만든 것이다. 월하노인은 궁극의 깨달음이고 도이며 또한 비롯됨이 없이 스스로 존재하는 우주의 주재자를 상징적으로 비유한 것이다. 따라서 삼신할미는 바로 삼태극이며 현빈이다.

삼신할미에서 삼신(三神)은 세 개의 골짜기(곡신谷神)를 그렇게 표현한 것이다.

 

삼매三昧

우리가 자신의 존재조차 잊어버리고 어떤 일에 몰두하였을 때 삼매(三昧)에 들었다고 한다. 그러나 삼매(三昧)라는 한자의 어느 글자에서도 몰두한다는 뜻은 없다. 그런데 삼매(三昧)는 몰두한 상태를 의미하는 것으로 사용하고 있다. 왜 그런가 하면 그 유래가 도(道)에 있기 때문이다.

‘삼매(三昧)에 든다’고 할 때에 삼매(三昧)는 삼태극이며, 도덕경에서 말하는 현빈(玄牝)이며, 반야심경의 반야바라밀다이며, 민속설화에 나오는 삼신할미이다. 따라서 ‘삼매경(三昧境)에 든다’ 함은 현빈(삼태극)에 든다는 말을 두고 하는 것이다.

三(셋 삼) 昧(새벽 매, 어두울 매)

매(昧)는 새벽에 동트기 전에 어둑어둑하고 컴컴한 상태를 의미하는 글자이다. 새벽은 밤과 낮의 경계로서 밤도 아니고 낮도 아니면서 밤과 낮을 포괄하게 된다. 즉 매(昧)가 상징하는 것은 밝음과 어두움의 경계이다.

색(色)과 공(空)의 경계, 유(有)와 무(無)의 경계, 용호비결에서 말하는 태극이 갈리기 이전의 경지에 있는 것 같은 경계(已在於太極未判之前矣)는 모두 하나의 경계를 말하는 것이다. 정신수행(조식수행)에서 ‘경계’는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수행의 목표가 다름 아닌 바로 이 경계에 드는 것이기 때문이다.

밝음과 어두움의 경계를 상징하는 매(昧)라는 글자 앞에 삼(三)이라는 글자를 붙인 이유는 현빈이 삼태극으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입정에 들어 삼태극에 들어간다는 표현을 삼매(三昧)에 들었다고 하였던 것이다.

이처럼 삼매와 입정, 참선은 모두 같은 경계를 의미하는 용어이며, 이 때 수행자의 호흡이 없는 듯한 경지에 드는데, 이를 두고 무호흡지식에 들었다고 말하는 것이다.

수행 중에 마음을 완전히 비워 자신의 존재도 잊을 정도의 몰입이 삼매(三昧)가 아니며, 삼매(三昧)는 이 보다 훨씬 더 나아가서 현빈일규를 이룬 후에 드는 입정(入定)상태를 삼매(三昧)에 들었다고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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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태극(현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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