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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신출태

무호흡 지식(無呼吸 之息)

삼원회 2015.08.06 17:12 조회 수 : 815

용어의 혼란

무호흡(無呼吸)에 대한 설명에 앞서 용호비결의 원문과 번역을 먼저 보기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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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飜譯)

  • 그러므로 태식이 능해진 후에야 이 기가 부드러워져서 화(和)하며, 화(和)하면 정(定)이 되어 마침내 ‘
    호흡이 없는 (듯한) 숨’을 쉬게 되는 것이다. 경에 이르기를 기가 안정되면 호흡이 없어진다고 하였다. -
    용호비결에 무호흡(無呼吸)이란 용어가 나오는데, 이 용어에 대하여 많은 오해가 있기에 경험을 토대로 이를 바로 잡고자 한다.

     

먼저 지식(止息)이 무호흡을 가리킨다고 하는 오해가 있으나 전혀 다른 내용이다. 지식은 숨을 최대한 참고 멈추어서 하는 호흡으로 차력 등을 할 때 일시적으로 힘을 모으기 위해 하는 방법이다,

다음에 무호흡의 경지에 가면 숨을 전혀 쉬지 않는다고 하는 오해도 있다. 조식수행(단전호흡)에서 호흡을 전혀 하지 않는 경지란 없다. 비록 한 번의 호흡을 하는데 걸리는 시간이 1시간이나 하루 혹은 더 긴 호흡을 하는 것이지 호흡을 전혀 하지 않는 경우는 없다. 호흡이 없으면 폐기도 없게 되므로 정기신을 기를 수도 없다.

심지어 무호흡은 태식을 의미한다고 하면서 조식수행(단전호흡)의 궁극적 경지라고까지 하는 경우도 있는데, 전혀 부당한 말이다. 태식을 하다보면 이런 상태에 이르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태식도 무호흡도 조식수행(단전호흡)의 궁극적인 경지는 아니다.

조식수행의 궁극적인 경지는 태허와 내가 하나임을 확인하는 경지이다. 궁극적인 깨달음 외에는 태식도 그 무엇도 궁극의 경지나 목표는 아니다.

문헌에 나오는 무호흡지식은 호흡이 없는 상태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코로 느낄 수 없을 정도로 그 호흡이 극히 미세하여 호흡이 사라진 듯한 숨을 쉬게 되는 것을 이렇게 표현한 것이다. 어느 책에서도 이것을 바로 설명하지 않으므로 ‘호흡이 없는 듯한 숨’이라고 번역을 하여 바로 잡아 보고자 한다.

 

호흡이 없는 듯한 숨이란?

무호흡(無呼吸)이란 실제 호흡이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호흡이 극히 미세하여 코로 들어가고 나가는 것이 없는 것처럼 느껴지는 상태를 표현한 말이다.

그리고 이러한 상태는 한 번 경험하면 계속 이 상태를 유지할 수 있는 것은 아니며, 공부수준이 일정한 단계에 오른 후에 열심히 정진하다 보면 가끔 일어나는 상황이다.

또한 호흡의 길이가 서서히 길어지면서 이러한 단계에 이르는 것도 아니다. 열심히 정진하는 중에 어느 순간 갑자기 호흡이 수 십 배로 길어지는데, 이 때에는 수행자 자신도 호흡이 없어진 것으로 착각을 하게 된다. 그러나 한 두 호흡이 지나면 호흡이 없어진 것이 아니라 상상할 수 없을 만큼 길어졌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렇다고 이 때부터 자리에 앉으면 항상 이러한 호흡의 길이로 정진하게 되는 것도 아니다.

처음으로 이런 경험을 하였을 때 오후 5시경부터 시작하여 두 시간 정도 수행하고 있었는데 어느 순간 호흡이 사라지고 없어지는 것을 느꼈다고 한다.

그 당시에 호흡이 사라진 것으로 착각하였다고 한다. 코로 숨이 들어가고 나가는 것을 전혀 느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1~2회의 호흡이 지나고 나면서 호흡이 없어진 것이 아니라는 것을 자연히 알게 되었으며 호흡이 서서히 길어진 것도 아니고 잠깐 사이에 이러한 단계로 진입하게 된다는 것이다.

아침까지 수행하는 동안 밤새 4~5회의 호흡이 전부이다. 노자(老子)가 말하는 ‘코로 들어가고 나가는 것이 없는데 그 숨이 깊고 깊은(鼻無出入 其息深深)’ 상태나 용호비결에서 말하는 무호흡지식은 모두 이를 두고 이르는 말이다. 이 후에는 열심히 정진하다 보면 종종 이런 현상이 일어나면서 호흡의 횟수도 점점 줄어들고 2~3일동안 무호흡 지식에 들어가며 이 때를 두고 삼매경 또는 입정에 든 것이라고 한다.
이 때에는 짐승들은 가까이 접근하지 못하며 혹시라도 사람이 이것을 발견한다면 몸에 손을 대거나 옳겨서는 절대 않되며 다른 이가 손을 대지 못하도록 지켜주어야 하는 것이 옳다.

 

 

무호흡지식의 재검토
 

연기화신(鍊氣化神)

용호비결의 이 문장은 연기화신(鍊氣化神)과 연신환허(鍊神還虛)를 포괄적으로 설명하여 자세히 검토해 볼 필요가 있는 중요한 문장이다. 여기서 유(柔)와 화(和), 그리고 정(定)은 각각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아볼 필요가 있다.

기는 부드러운 것과 강한 것이 있는데, 강한 기는 신으로 화(化)할 수가 없다. 부드러워진 기만이 신으로 화(化)하게 된다. 그래서 기를 부드럽게 하는 태식으로 신을 기를 수 있는 것이다. 태식이 기를 부드럽게 하는 이유는 마음을 고요히(靜) 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마음의 경지를 고요할 정(靜)자를 써서 입정(入靜)의 상태라고 한다.

그리고 부드러워지면 화(和)한다고 하였는데, 여기에서 화(和)는 이른바 중용(中庸)에서 말하는 화(和)의 개념으로 절도에 어긋남이 없이 완전하게 어울리는 것을 의미한다(皆中節). 기가 어울린다는 뜻은 신(神)에 완전하게 동화(同和)하는 것이며, 신으로 화(化)한다는 뜻이다. 연기화신(鍊氣化神)의 단계이다.

 

연신환허(鍊神還虛)

신으로써 허(虛)에 이르는 설명은 위에서처럼 단순하지는 않다. 허(虛)의 단계는 단순히 몸과 마음을 고요히 하는 단계보다 더 깊은 경지이며 보다 진보된 단계이다.

그러면 허(虛)란 무엇이며 구체적으로 어떠한 경지를 말하는가? 노자의 도덕경과 용호비결에서 허(虛)를 묘사한 문장을 각각 보기로 하자.

도덕경 찬현(贊玄)편에서 도의 허(虛)함은 볼 수도 없으며(이夷), 소리도 없으며(희希), 만질 수도 없는(미微) 무물(無物)의 형상이라 분간하기 어렵다(황홀恍惚)고 하였다. 그리고 허심(虛心) 편에서는 분간하기 어려운(황홀恍惚) 가운데에 도가 있고, 고요하고 아득한(요명窈冥) 가운데에 정이 있다고 하였다. 도덕경의 두 편을 요약하면 말 그대로 허(虛)하여 분간할 수 없는 상태를 의미한다.(요명窈冥, 황홀恍惚)

용호비결에서는 내가 육신에 깃들어 있는지 육신이 내게 깃들어 있는지 분간하기 어려운 상태 즉, 요명과 황홀을 강조하여 ‘요요명명(窈窈冥冥)’ ‘황황홀홀(恍恍惚惚)’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였다. 또한 태극이 갈리기 이전의 경지에 있는 것 같은(已在於太極未判之前矣) 상태만이 참된 경계라고 하였다. 모두 허(虛)의 상태를 표현한 것이다.

허(虛)는 단순히 아무런 욕망과 생각도 일으키지 않는 고요한 마음의 상태 입정(入靜)보다 한 단계 더 깊게 진보된 상태이다. 이러한 상태를 ‘허(虛)에 자리한다’고 하여 입정(入定)이란 용어를 사용한다.

入靜(입정)과 入定(입정)은 다르다. 무호흡지식(無呼吸之息) 이전의 태식이 입정(入靜)이며, 아직 허(虛)에 이르지는 못한 상태이다. 무호흡지식이 시작되면 비로소 허(虛)로 들어가는 것이며, 이를 입정(入定)이라고 한다. 엄밀히 말하면 입정(入定)의 상태는 도에 이른 상태로써 깨달음에 이르렀다고 표현한다.

화(和)한 기는 지극히 안정(定)되면 마침내 호흡이 없는 듯한 숨을 쉬게 된다고 하였는데, 여기에서 정(定)은 연신환허(鍊神還虛-神으로써 虛로 들어감)의 단계이다. 무념(無念)의 상태 즉 아무런 생각도 일어나지 않아서 마음이 마치 고요한 호수와도 같은 상태에 이르면 허(虛)에 이르렀다고 하는 것이다. 허(虛)에 이르면 무호흡지식(無呼吸之息)의 단계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胎息(태식)

 

入靜(입정)

 

入定(입정)

 

 

氣柔(기유)

氣和(기화)

氣定(기정)

=>

無呼吸之息(무호흡지식)

氣(기)

神(신)

虛(허)

=>

無呼吸之息(무호흡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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