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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식과 화두

현도학회 2004.12.13 13:23 조회 수 : 1290

제목 : 조식과 화두
이름 : 박민욱()
등록일 : 2002년 03월 14일    조회수 : 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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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는 조식수행으로 깨달음에 이를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절에서는 깨달음에 이르기 위하여 화두를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화두와 조식수행은 모두가 깨달음에 이르는 길입니다.

천지만물의 진리가 하나이니 조식수행이건 화두이건 어느 쪽이든 성공을 하여 얻는 것은 같은 것(깨달음)입니다.

그러면 깨달음을 얻기 위하여 어느 쪽 길이 유리한가를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화두와 관련하여 조식수행의 장단점에 대한 고견을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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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호 : 27
제목 : 답글 ] 조식과 화두
이름 : 삼원학회()
등록일 : 2002년 03월 20일    조회수 : 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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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조식과 화두

정신통일을 이루어서 깨달음을 얻기 위한 길이라는 점에서 양자는 같습니다.

조식수행은 정신을 호흡에 집중하지만, 화두는 의식을 주어진 화두에 집중합니다.  정신을 집중한다는 점에서는 양자는 같으며 정신통일을 하는 것이 양자의 실질입니다.

정신통일이 이루어져야 현로를 밝힐 수 있기 때문입니다. 현빈일규를 불가에서는 견성이라고 하는데 이 때 경험하고 깨닫는 것은 양자가 같습니다.

우주의 이치는 하나입니다. 깨달음이란 동일한 것입니다. 종교나 수행방법에 따라서 깨달아서 알게 되는 것이 달라지는 것이 아닙니다.

영원불변한 진리가 종교에 따라서 수행방법에 따라서 달라질 수가 없습니다.  달라진다면 이미 영원불변이 아니고 영원불변이 아니면 그 것은 하늘과 땅의 이치가 아닙니다.


2. 화두와의 차이점

화두는 한가지 의문입니다. 의문에 대한 대답을 얻었다고 해서 화두를 풀었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견성을 얻어야 비로소 화두를 풀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화두는 정신통일을 위한 수단이며 질문에 대한 답을 얻는 것이 목적이 아닙니다. 처음에는 일체의 잡념을 모두 버리고 오로지 화두에만 정신을 집중하여 정진하다가 견성을 얻기 위해서는 마침내 화두도 놓고(의식에서 잡념뿐이 아니라 화두조차 버리고) 내가 존재하는지 아닌지 구분하기 어려운 경계에 들어서서 깨달음을 얻어야 비로소 화두를 풀었다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이라는 화두로서 ‘뜰 앞에 놓인 돌’이라는 선문답을 하였다고 해서 화두가 풀린 것이 아닙니다. (인연따라 뜰 앞에 돌이 놓인 이치와 마찬가지로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 인연따라 간 것이다.)

3. 견성

그리고 화두가 터지는(견성) 시기는 좌정하여 수련하는 중에만 일어나는 것은 아닙니다. 식사중에도 일어날 수 있고 걸어가다가 견성을 할 수 있고 화두수행 중에 견성을 얻을 수 있습니다. 이 것은 기운이 익을 때로 익으면 수행중이 아니라도 터지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화두가 터지는 상황에서는 한순간에 세상이 아주 밝게 보이고 생각이 아주 밝아지며 그리고 그 순간에는 세상의 어느 것과도 비교할 수 없고 어떤 글이나 말로도 표현하기 힘든 정도의 황홀함을 경험하게 됩니다. 그러면서 평소 품고 있던 의문이 그 순간에 풀리며 모두 알게 되어집니다.  

화두가 터지며 견성을 얻는 순간이나 조식수행에서 현빈일규가 일어나는 상황이 같으며 얻는 것도 같습니다. 법과 도는 용어는 달라도 서로 다른 둘이 아니고 하나입니다.

오랜기간 절실히 공들이며 공부한 보람이 한순간에 보상되며 열심히 공부하는 것도 바로 이 순간을 위하여 하는 것입니다.

4. 화두의 유래

석가모니 부처는 화두 수행을 하지 않고 조식수행을 하하 해탈까지 이른 분입니다.

석가가 수행을 하고 있을 때 마장(귀신)이 장난을 치려하다가 죽은 사람인 줄 알고 그냥 돌아갔다고 하는 말이 전합니다.

견성(현빈일규)을 얻은 후에는 현빈(=삼태극,반야바라밀다)에 들어갈 수 있는데 현빈에 들어갈 때에는 호흡이 사라진듯한 경계에서 들어가게 됩니다.

호흡이 너무 깊어 마치 호흡이 없는 것과도 같은 경계(홈페이지의 무호흡 지식 참고)에 들어가게 되면 이 때 사람의 몸은 마치 죽은 사람과도 같습니다. 석가가 이러한 경지에서 수행을 하고 있을때 귀신도 이를 보고 죽은 사람인줄 알고 돌아갔을 것입니다. 이것은 석가가 화두가 아닌 조식수행을 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또한 불가(佛家)에 전하는 불설대안반수의경(佛說大安般守意經)은 호흡수행을 설명하는 책으로 석가는 화두가 아닌 조식수행(調息修行)을 했다는 것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화두수행은 달마조사로부터 유래합니다.
전해오는 말에 의하면 달마가 소림사에 와보니 중들이 수행은 하지 않고 끼니를 때우기 위한 수단으로 승복을 입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조식을 가르쳐보았으나 제대로 해내지 못하자 생각해 낸 것이 화두를 던져주고 이것에 집중하는 화두선이라고 합니다. 결국 화두선은 조식수행을 제대로 해내지 못하는 것에 대한 대체수단으로 좀더 쉽은 방법을 찾다 생겨난 것입니다.

5. 부작용

조식수행이건 화두이건 깨달음을 향해 가는 행로에는 많은 부작용이 따릅니다.

조식수행시에 억지로 힘을 들여 호흡을 밀게되면 부작용이 따르게 됩니다. 예를 들면 백회나 인당이 압력을 받거나 혈압이 일시적으로 오르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얼굴이 화끈거리는 경우도 있는 등 여러 종류의 부작용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증상들은 호흡에 무리를 가하지만 않으면 나타나지 않습니다

하지만 화두선은 자체가 주어진 화두에 골목히 집착하는 것이기 때문에 상기되는 경우가 많으며 눈이 충혈되고 심하면 고막이 터지기도 하고 광인이 되기도 합니다.
달마이래 중국선종(禪宗)의 2조(祖)인 혜가는 화두선으로 성공하여 도(道)를 이루었습니다. 그러나 나중에는 화두선을 계속하다 미치광이가 되어 사람들에게 허튼 소리를 하고 다니다, 결국에는 관가에 잡혀 처형당하고 말았습니다.

화두선이 비록 달마가 전한 수행법이기는 하지만, 달마가 지도한 혜가 조차도 미쳐 버렸다면 수행법으로서 적절한지의 여부는 의심해 보아야 할 것으로 여겨집니다.

6. 결론

어느 방법이건 정신통일을 이루어야 신(神)이 밝혀지며 신(神)이 자랄 만큼 자라면 백회가 열립니다. 어떠한 수행법이건 깨달음은 백회가 열리면서 얻어집니다.

그런데 안타까운 것은 석가모니 부처이래 불가에서 법력이 높은 대덕고승이 많이 배출되었는데 달마이래 수행법이 화두선으로 바뀐 이후에는 현저히 줄었다는 것입니다.



끝으로 정신수련시 항시 유념해야 할 3가지를 제시해봅니다.

* 집착을 버려라.
* 자신을 잊어라.
* 깨어 있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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