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식(調息)은 한자 그대로 해석하면, ‘숨쉬는 것을 고르게 한다’는 뜻이다. 조식의 ‘息’이 한자로는 숨쉴 식(息)이지만, 이 ‘息’이라는 글자는 ‘호흡(呼吸)’과는 개념상 미묘한 차이가 있다. 문헌에 나오는 용어로서의 ‘호흡(呼吸)’은 단순히 코로 공기가 들어가고 나오는 것을 의미한다. 일상용어로서의 ‘숨을 쉰다’는 말과 같다. 이에 반해, ‘息’은 호흡에 기(炁)를 포함시킨 개념이다.
몸과 마음의 건강을 지키는 세 가지가 있다고 한다. ‘조신(調身)’, ‘조심(調心)’, ‘조식(調息)’이 그것이다. 이 세 가지는 삼위일체의 개념이다. 아버지와 어머니의 결합으로 아이가 태어나는 것처럼 조식은 조신과 조심을 결합하여 만들어진 단어이다. 식(息)을 파자(破字)하면 “身+心=息”이 되므로, 조식은 조신과 조심을 포괄하는 의미를 지니게 된다. 따라서 ‘조식(調息)은 태식(胎息)을 포함한 폐기(閉炁)를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선조들은 ‘조식’이라는 용어를 문장에 따라서 작게는 ‘폐기’라는 뜻으로, 크게는 단학(丹學)의 의미로 병용하였다. 이곳에서도 ‘조식’과 ‘폐기’는 거의 동일한 의미로 병용하였다.
단학(丹學)
‘단학(丹學)’이라는 용어는 용호비결에 등장하는 용어이다. 단(丹)은 ‘붉을 단’인데, 붉은 것은 화(火)이며, 화(火)는 ‘밝음’이다. 밝음은 곧 ‘깨달음’을 뜻한다. 따라서 단학이라 함은 ‘조식(調息)을 통한 폐기(閉炁)로써 정기신(精氣神:다음 장에서 자세히 설명)을 길러 도(깨달음)에 이르기 위한 수행’을 말하는 것이다. 이능화(李能和:1868~1945)가 그의 저서 <조선도교사> 제21장 조선 단학파 속에서 단학파, 단파, 단학 등의 말을 사용하면서부터 차츰 일반화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이곳에서는 단학이라는 용어는 필요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사용하지 않았다. 오늘날에 단학이라고 부르는 용어의 의미 자체가 이미 상업적 수단으로 변질되었으며 수행으로서의 의미는 사라지고 천박해졌기 때문이다.
조식수행(調息修行)
‘조식수행’이란 용어는 조식(調息)을 통한 폐기(閉炁)로써 깨달음에 이르기 위한 수행을 말한다. 조식수행(調息修行)은 폐기로써 정기신(精氣神)을 길러 작게는 육체와 정신의 건강을 지키고, 크게는 도(깨달음)를 얻어 널리 사람들을 이롭게 하기 위한 수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