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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의 문답

수련중의 여러현상에 대하여

현도학회 2004.12.13 13:32 조회 수 : 1428

제목 : [질문]수련중의 여러현상에 대하여
이름 : 이영애()
등록일 : 2002년 08월 10일    조회수 : 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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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저는 Y단학 수련단체에 들어 여러해 동안 수련을 해왔습니다.
그동안 여러책도 많이 보고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도 들어 보았습니다.
그런데 저를 지도해 주셨던 큰 선생님께서는 수련중 수련자의 장기의 모습이  훤히 들여다 보이는 현상이 있다고 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아직까지 저는 여러해 수련을 해왔지만 그러한 현상을 아직 한번도 겪어보지 못했는데 그것이 진실인지 의문이 생깁니다.
아니면 제가 무엇인가를 잘못하고 있는 것인지 알고 싶습니다.
이곳에 소속된 사람은 아니지만 답변좀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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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호 : 48
제목 : 답글 ] 단학은 현상을 보기 위한 공부가 아닙니다.
이름 : 삼원학회()
등록일 : 2002년 08월 11일    조회수 : 2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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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자신의 장기를 자신 밖에서 볼 수가 있습니다.

열심히 수행을 하여 어느 단계에 가면 현상이 나타납니다.
질문한 내용에서 자신의 장기를 보려면 현빈일규를 경험해야 가능합니다. 현빈일규를 이루었다고 해서 아무때나 자신의 장기를 들여다 볼 수 있는 것은 아니고 고요하게 입정에 들어선 상태에서만이 가능합니다.

원신출태를 이루었다고 해서 삼화가 항상 뜨는 것이 아니듯이 자신의 장기를 보고 싶다고 해서 항상 볼 수 있는 것이 아니고 나의 精神이 虛에 이르렀을 때만이 가능합니다. 이러한 때에 자신의 수행하는 모습이 내 밖에서 보이기도 하며 내 몸안의 장기가 들여다 보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자신의 장기를 보고자 하면 보이지를 않습니다. 왜냐하면 보고 싶어 하는 마음이 곧 잡념이 되어 내 마음이 虛에 들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얻고자 하면 버려야 하는 이치입니다. 현빈일규 후에 더욱 정진하여 주천화후를 이루고 대주천을 완성하게 되면 좀 더 차원이 높은 것도 볼 수 있게 됩니다.

그리고 대주천을 완성하였다고 하여도 삼시충이 제거되지 않은 상태에서는 이러한 현상들은 불가능합니다. 삼시충이 내 몸에서 나가지 않는 경우는 기를 인위적으로 운행시켰거나 약을 복용하여 약의 힘으로 기를 빨리 운행시킨 경우등이 해당하는데 본 홈페이지의 삼시충 코너에서 이에 대하여 자세한 설명을 하였으니 참고하시기를 바랍니다. 삼시충이 제거되어 내 몸이 깨끗해지지 않으면 虛에 이를 수가 없습니다.


2. 단학은 현상을 보기 위한 공부가 아닙니다.

단학수행에 있어서 현상이란 수행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것이기는 하지만 단순히 현상을 보는 것이 단학수행의 목표는 아닙니다. 현상을 통하여 모르는 것을 아는 것이 목적입니다. 보이는 것으로 말하자면 어디 자신의 장기 뿐이겠습니까?

과거의 어느 분이 장기를 볼 수 있다고 말한 이유도 공부를 독려하기 위해 하나의 예를 들었던 것이지 자신의 장기를 들여다보기 위해서 공부를 하라고 한 말은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입정상태에서 자신의 밖에서 자신의 장기를 보았다고 하면 단순히 자신의 장기를 현상하는 것 뿐이 아니라 오장육부 기능과 상태 등 그에 대한 이면의 이치까지 자연히 알아지게 됩니다. 그리고 공부가 깊어 질수록 보다 깊이 알게 됩니다.

參禪이라고 할 때 禪이라는 글자를 쓴 이유도 '示(보일 시)+單(홑 단) => 혼자 스스로 보고 깨닫는다'는 뜻에서입니다. 수행과정 중에 현상을 통하여 많은 것을 알게 되지만 현상만이 전부는 아닙니다.

단학은 엄연히 깨달음에 이르기 위한 수행입니다.
바른 이치를 알지 못하여 그릇된 생각을 지니게 되고 길지도 짧지도 않은 인생을 고뇌하고 애태우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세상은 준엄하게도 하늘의 이치에서 한치의 오차도 없이 돌아가고 있습니다. 다만 우리가 그 이치를 알지 못하여 순응하지 못하며 순응하지 못하는 까닭에 고통받는 것입니다.

道에서는 事必歸正이 아닌 것이 없습니다. 太虛에 의하여 비롯된 太初에서 지금까지 그리고 앞으로 전개될 미래가 영원불변한 하늘의 이치에 따라 그대로 전개되는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하나의 이치에 의하여 움직이고 변하니 단편적으로는 다르게 보이더라도 연결시켜서 보면 하나입니다.

하늘의 이치에서 벗어나는 것은 正이 아닙니다. 인간사의 상식이 正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상식은 시대나 사상에 따라 변할 수 있는 단편적인 기준일 뿐이기 때문입니다.

강조하건대 단학수행은 이러한 하늘의 이치를 스스로 깨달아서 진정한 자유를 얻기 위한 공부이지 궁금한 것을 보기 위해서 혹은 세속적인 호기심이나 풀기 위해 하는 공부가 아님을 다시 한번 말씀드립니다.

남들이 보지 못하는 신기한 것을 보는 것이 현상이라고 하는 오해가 많이 있습니다.
수행 중에 현상을 통해서 삼라만상의 이치를 하나씩 깨달아 알게 되는 것이며 세속적인 궁금증이나 호기심이 보였다면 그 것은 공부과정에서의 참된 현상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우주 만유의 이치를 하나씩 알아지게 되는 것이 참된 현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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