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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빈

반야심경(般若心經)

삼원회 2015.08.06 18:08 조회 수 : 11353

비록 불교도는 아니지만 도가의 입장에서 도와 허(虛)의 관계를 반야심경(般若心經)에서 검토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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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적인 해석]

관자재보살이 깊은 “반야바라밀다”를 행할 때, 다섯 가지 쌓임이 모두 “”한 것을 비추어 보고 온갖 괴로움과 재앙을 멸도했느니라.

사리자여, 물질이 공과 다르지 않고, 공이 물질과 다르지 않으며, 물질이 곧 공이요, 공이 곧 물질이니, 느낌과 생각과 의지작용과 의식도 또한 그러하니라.

사리자여, 이 모든 법의 공한 모양은 생겨 나지도 없어 지지도 않으며, 더럽지도 깨끗하지도 않으며, 늘지도 줄지도 않느니라.

그러므로 공 가운데에는 물질도 없고, 느낌도 생각과 의지작용과 의식도 없으며, 눈과 입과 코와 혀와 몸과 뜻도 없으며, 형체와 소리와 냄새와 맛과 감촉과 의식의 대상도 없으며, 눈의 경계도 없고, 의식의 경계까지도 없으며, 무명도 없고, 또한 무명이 다함도 없으며, 늙고 죽음도 없고, 또한 늙고 죽음이 다함까지도 없으며, 괴로움과 괴로움의 원인과 괴로움의 없어짐과 괴로움을 없애는 길도 없으며, 지혜도 없고 얻음도 없느니라.

얻을 것이 없는 까닭에 보살은 반야바라밀다에 의지하므로 마음에 걸림이 없고, 걸림이 없으므로 두려움이 없어서 뒤바뀐 헛된 생각을 아주 떠나 완전한 열반에 들어가며, 과거 현재 미래의 모든 부처님도 이 반야바라밀다에 의지하므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느니라.

그러므로 알아라. 반야바라밀다는 가장 신비한 주문이며, 가장 밝은 주문이며, 가장 높은 주문이며, 무엇에도 견줄 수 없는 주문이니, 온갖 괴로움을 없애고 진실하여 허망하지 않느니라. 그러므로 반야바라밀다의 주문을 말하노니 주문은 곧 이러하니라

가자, 가자, 건너가자. 다 함께 건너가자. 깨달음이여, 영원하리.

 

반야심경에서는 현빈을 반야바라밀다라고 하였다. 반야바라밀다는 공(空)과 색(色)의 경계이며 공(空)과 색(色)이 하나로 포괄되는 곳이다.

반야심경의 첫 구절인 행심반야바라밀다시(行深般若波羅密多時-깊은 반야바라밀다에 들었을 때)라는 구절은 삼매(三昧)에 들었다는 뜻이다. 도가(道家)적으로 표현하면 현빈(玄牝, 삼태극)에 들었다는 말이다. 즉 현빈에 들어서 공(空)과 색(色)이 한가지임을 보고 득도(得道)했다는 뜻이다.

반야심경의 전체적인 내용을 요약하면 수행을 통해서 반야바라밀다(玄牝, 三昧, 삼태극)에 들면 ‘불생불멸∼부증불감’(不生不滅∼不增不減)인 공(空)과 수상행식(受想行識)∼소득(所得)까지의 색(色)이 같은 것임을 깨닫게 된다는 것이다.

반야바라밀다(현빈)에서만 깨달음(아뇩다라삼먁삼보리, 法, 道, 體)을 얻을 수 있으니 반야바라밀다(현빈)보다 밝고 높으며 견줄만한 진리는 없다는 내용이다.

한편 반야심경의 내용을 체상용(體象用)의 구성으로 이해하면, 공(空)은 체(體)가 되고 반야바라밀다는 상(象)이며 색(色)은 용(用)이 된다. 공(空)은 법의 ‘본질’이고, 색(色)은 법의 반야바라밀다를 통한 ‘작용’이므로 색즉시공(色卽是空)이라 한 것이다.

색(色)과 공(空)을 등식이 되도록 연결하는 고리가 바로 현빈인 것이다. 색(色)인지 공(空)인지 모호한 경계이며 존재하는 것인지 않는 것인지 혼동되는 유야무야(有耶無耶)한 경계인 반야바라밀다(현빈, 삼태극, 삼매)이다.

‘가자’는 반야바라밀다(현빈)에 가자는 뜻이니 수행하자는 뜻이며 ‘건너가자’는 뜻은 반야바라밀다(삼매, 현빈, 입정)에 들어서 우주의 영원한 진리(法, 道, 열반, 깨달음)를 얻어야 한다는 염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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