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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택비결

음택비결 1

삼원회 2015.08.06 22:05 조회 수 : 533

오늘날에 전하는 대부분의 풍수서적들과 풍수론들이 방위학(方位學)에 기준을 두고 명당(明堂)을 논하는 책과 이론들이 대부분이다. 그러나 본래 지리풍수에서 길지(吉地)를 구(求)하는데 있어서 패철(佩鐵)이라는 도구는 필요하지 않다. 지리풍수의 모든 이치는 태초(太初)에 조물주가 창조한 지형의 흐름에 따라 명당의 이치를 갖춘 곳을 찾는 것이지, 패철을 놓고 무슨 방위라서 길(吉)하고 흉(凶)하다고 하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 것이다. 다만 터의 좌향을 족보에 기록하기 위한 수단으로 방위를 사용하는 것일 뿐이다.


옛날에는 전쟁이 많아 전쟁중에 산소의 위치를 알고 있는 자손이 죽는다든가 멀리 피난을 갔다가 세월이 흐른 후 돌아왔을 때 그 자손들이 조상의 산소를 찾아 보살필 수 있도록 무슨 산의 어떤 좌향에 무덤을 썼다는 것을 족보에 기록했던 것이다. 족보에 기록하는 것 이외에 따로 좌향과 무덤주인에 대한 내용을 간략히 써서 무덤속이나 앞쪽에 대략 한자 정도의 깊이로 지석(誌石)을 묻기도 하였다. 조상의 무덤을 찾지 못할 때 이것을 파서 확인하고 찾았던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에는 어찌 된 것이 이 좌향을 가지고 명당을 논하고 있으니 안타까운 일이다.



명당을 구함에 있어 패철을 놓고 방위를 논하며 명당의 가부(可不)를 운운하는 자가 있다면 마땅히 주의하고 경계해야 할 것이다. 한 가문의 명운(命運)과 흥망(興亡)을 좌우하는 음택(陰宅)에 있어서 자칫 이런 이들을 명사(名師)로 착각하고 장사(葬事)를 맡겨 한 집안의 몰락을 자초하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다. 좌향은 자연이 만든 그대로 정해져 있는 것이지 패철을 놓고 정하는 것이 아니다.



방위학이 지리풍수학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게 된 것은 지리풍수가 오랜 세월을 두고 전해오면서 호사가(好事家)들에 의해 진의(眞意)를 알기 어렵도록 복잡하게 꾸며졌기 때문이다. 



여기에 소개하는 요결이 음택에 대한 모든 것을 담지는 못하고 있다. 원론적(原論的) 총론(總論)으로도 부족함이 있기는 하지만, 복잡하고 난잡한 방위학은 배제하고 자연의 흐름에 따라 명당을 구하는 요지를 설명하고자 애쓴 글이다. 참고하여 익힌다면 흉지(凶地)를 피하고 길지(吉地)를 구하는데 다소나마 도움이 될 것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이것이 지리에 대한 각론(各論)은 될 수 없으므로 좀더 깊이 지리의 이치에 대해 알고자 하는 이라면 더욱 정진하며 연구해야 할 것이다.

 

음택서문




감여(堪輿)의 술(術)은 승(乘)과 생(生)과 기(氣) 삼자(三者)에 지나지 않는다. 이것을 따르는 것이다. 기운이 땅 가운데 행함에 맑고(淸), 흐리고(濁), 생하고(生), 사(死)하고, 가고(去), 머무르고(留), 모이고(聚), 흩어진(散) 것이 의지해 웅거한 곳이 없다. 따라서 용(龍)과 혈(穴)과 사(砂)와 수(水), 모든 여러 말로서 산(山)을 점쳐 증험(證驗)하는 것이다. 비유하건데, 의원이 병자(病者)를 봄에 병이 안에 있으되 병의 뿌리를 아는 자는 형용(形容)을 보고, 색(色)을 살피고, 맥(脈)을 짚고, 증세(症勢)를 의논해서 따뜻하게 하고, 서늘하게 하고, 보해주고, 덜게 해주는 나눔을 분별하는데 지나지 않는 것과 같다. 이것은 그 바깥을 살펴서 그 안을 증험하는 것이다.

이제 산의 기운이 모이고 흩어지는 것을 증험하는 것은 수(水) 한 글자에 있다. 경(經)에 이르기를, 기(氣)라는 것은 물의 어머니이다. 기가 있음에 물이 있음이요. 또 이르기를 명당(明堂)은 물을 아끼는 것을 피를 아끼는 것과 같이 하고, 혈(穴)의 속은 바람 피하는 것을 적(賊)을 피하는 것과 같이 한다고 하니, 이것이 풍수(風水)의 제일 요긴한 말이다.
세상에 이것을 푸는 이가 없어서 괘예(卦例)의 설(說)이 분연(紛然)히 섞여 그 사이에 나서 오로지 도장(倒杖)을 놓는 본지(本旨)가 말살되고 한낮 방위만 숭상함에 모든 법이 한세상 사람으로 고기의 눈을 진주(眞珠)라 하고 무쇠를 좋은 구슬이라 하니, 참으로 가히 탄식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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